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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3

[정태춘과 그의 음악세계]_03. 회한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버려진 이상주의자 버려진 이상주의자는 지나간 시대에 대한 회한과 다가오는 시대에 거는 희망을 노래한다. 세기가 바뀌고, 시대가 교차하는 1990년대 세기말에, 정태춘은 외환위기가 초래한 신자유주의적 각자도생의 새천년을 향해 나아가는 세상을 목격한다. 이상향을 향한 투쟁의 섬광으로 정태춘을 깨웠던 대학가는 어느새 기득권에 편입되길 바라는 소시민들의 공간이 되어 있었고, 해체된 진보적 담론과 내면화된 경쟁사회는 그를 대중으로부터 고립시켰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여정을 함께 해오던 동지들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와 노풍(盧風)이 가져온 주류교체의 바람을 통해 권력은 시민으로 넘어갔다는 환상을 품었지만, 정태춘의 눈에 권력은 군부독재에서 자본독재로 이양되었을 뿐이었다. 한때 그를 움직였던 세상에 대한 분노와 갈망은 혼돈과 회의.. 2023. 11. 3.
[정태춘과 그의 음악세계]_02. 민중 속으로 들어간 시인, 투사가 되다 음악을 넘어 시대와 마주한 시인은 마침내 투사(鬪士)가 되었다. 이 시대를 상징하는 어떤 항소이유서가 호소하고 있듯, 80년대는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였고 진정 조국을 사랑하는 많은 청년들의 마음속엔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과 노여움에 쌓여 있었다. 1987년 6월의 함성은 억눌린 그것들의 분출이었으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그 거침없는 민중적 욕구들은 7,8월의 노동자 대투쟁과 89년에서 91년으로 이어지는 공안정국을 거치며 정태춘에게도 큰 충격을 안겼다. 이미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다양한 청년들과 교감하며 자신의 음악이 가져다주는 서정과 향토성이 잠깐의 위약(僞藥)에 불과하다는 번뇌에 고심하던 그는 이 시대의 물결을 자신의 새로운 음악적 원천으로 삼았다. 그 .. 2023. 10. 30.
[정태춘과 그의 음악세계]_01. 시인의 마을에서 내려온 한국의 밥 딜런 태초에 모든 가수는 시인이었다. 고대 희랍(希臘)과 중세 유럽의 음유시인(吟遊詩人)들은 영웅의 모험담과 운명의 비극을 소재로 한 대서사시를 훼손과 망각 없이 대중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각기 다른 선율을 덧붙여 노래했다. 태고의 가수들이 멜로디를 담아 발화하는 어휘 하나, 문장 하나에 대중들은 대자연의 신비와 만나기도 했고 천일야화의 황홀경에 빠지기도 하고, 노기 띤 국왕과 귀족들을 떠올리며 박장대소를 할 수도 있었다.어쩌면 정태춘이야말로 그런 음악의 시적 원형을 체현하고 있는 가수이다. 정태춘의 가사에는 어지러운 관념과 추상이 없다. 정태춘이 다루는 것은 오직 오감과 경험, 현실이 뿜어내는 정서적 분비물들이다. 시인이란 그 사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자라고 하였던가. 1집 [시인의 마.. 2023.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