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넘어 시대와 마주한 시인은 마침내 투사(鬪士)가 되었다. 이 시대를 상징하는 어떤 항소이유서가 호소하고 있듯, 80년대는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였고 진정 조국을 사랑하는 많은 청년들의 마음속엔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과 노여움에 쌓여 있었다. 1987년 6월의 함성은 억눌린 그것들의 분출이었으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그 거침없는 민중적 욕구들은 7,8월의 노동자 대투쟁과 89년에서 91년으로 이어지는 공안정국을 거치며 정태춘에게도 큰 충격을 안겼다. 이미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다양한 청년들과 교감하며 자신의 음악이 가져다주는 서정과 향토성이 잠깐의 위약(僞藥)에 불과하다는 번뇌에 고심하던 그는 이 시대의 물결을 자신의 새로운 음악적 원천으로 삼았다. 그 시절 정태춘은 이 선택을 준비되어 있던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음악과 자신의 생애를 일치시키고자 했던 그 치열한 진정성은 서정과 토속세계에 천착하던 시인을 시대의 모순과 민중의 열망을 담는 투사로 깨어나게 했다. 나는 정태춘의 음악이 지닌 이 서사로부터 아름다움과 뭉클함을 느낀다.
일찍이 국악과 민속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이던 정태춘은 1988년 6집 <무진 새 노래>를 통해 기성 음반사와 결별을 선언하고, 스스로 음반을 제작하면서 새로운 음악세계를 개척해 간다. 이 변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노래 [얘기 2]에서 정태춘은 자신의 생애를 가사에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를 사설시조와 단모리, 휘모리의 배합, 여러 국악기 등을 사용하여 독창적으로 소화해 낸다. 한편, 1990년에 발매된 7집 <아, 대한민국>은 데뷔 이후 그의 음악을 짓눌러온 공연윤리위원회의 대대적인 검열에 맞서 불법 카세트 테이프로 대학가와 공연장을 중심으로 배포된다. 이는 음반의 사전심의 문제에 대한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켜 법정 공방으로까지 이어졌고 결국 정태춘이 촉발시킨 이 논쟁이 사전 심의의 폐지로 이어지면서 그가 음악성을 넘어 창작의 자유를 수호하는 사회운동가로서도 큰 족적을 남기게 하였다. 7집의 수록곡 [일어나라 열사여]와 [우리들의 죽음]은 이 검열의 암실을 뚫고 나온 한줄기 빛처럼 아주 노골적이고 신랄하게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체현하고 있는 두 죽음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1993년에 발매된 8집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한 시대를 지배했던 변혁의 물결이 현실의 벽과 자기모순에 부딪혀 사라진 90년대 한국의 모습을 담담히 담아낸다. 이 가운데, 동명의 타이틀곡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뜨거움과 간절함이 사라진 거리의 상실감과 아직 오지 않은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을 함께 담아낸 노래이다.
이 시기, 정태춘의 음악적 특성은 서정시가 보여주는 압축과 완곡의 아름다움에서 산문이 지닌 진솔함과 서사성으로 옮아온다. 물론 특유의 정서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으나 그 작법은 훨씬 직설적이고 거침없이 시대의 분노를 표현했다. 주로 농촌과 이상세계로 설정되어 있던 음악의 배경은 도시와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삶과 죽음의 현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세계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변하지 않는 사실은, 정태춘에게 노래란 단지 아름다운 선율의 조합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에 대해 던지는 하고 싶은 말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시인 정태춘과 투사 정태춘은 이렇게 충돌하지 않는 하나의 언명(言明)이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mA0hytGRqHY
작사 정태춘
작곡 정태춘
편곡 유지연
장르 포크/블루스
저 들 밭에 뛰놀던 어린 시절
생각도 없이 나는 자랐네
봄 여름 갈 겨울 꿈도 없이 크며
어린 마음뿐으로 나는 보았네
도두리 봄 들판 사나운 흙바람
장다리꽃 피어있는 학교길 보리밭
둔포장 취하는 옥수수 막걸리
밤 깊은 노성리 성황당 돌무덤
달 밝은 추석날 얼근한 농악대
궂은 밤 동구 밖 도깨비 씨름터
배고 픈 겨울밤 뒷동네 굿거리
추위에 갈라진 어머님 손잔등을
이 땅이 좁다고 느끼던 시절
방랑자처럼 나는 떠다녔네
이리로 저리로 목적지 없이
고단한 밤 꿈속처럼 나는 보았네
낙동강 하구의 심난한 갈대숲
희뿌연 안개가 감추는 다도해
호남선 지나는 김제벌 까마귀
뱃놀이 양산도 설레는 강마을
뻐꾸기 메아리 산골의 오두막
돌멩이 구르는 험준한 산계곡
노을빛 뜨거운 서해안 간척지
내 민족 허리를 자르는 휴전선을
주변의 모든 것에 눈뜨던 시절
진실을 알고자 난 헤매었네
귀를 열고, 눈을 똑바로 뜨고
어설프게나마 나는 듣고 보았네
서울로 서울로 모이는 군중들
지식의 시장에 늘어선 젊은이
예배당 가득히 넘치는 찬미와
정거장마다엔 떠나는 사람들
영웅이 부르는 노래와
젖은 논 벼 베는 농부의 발자욱
빛바랜 병풍과 무너진 성황당
내 겨레 고난의 반도땅 속앓이를
얼마 안 있어 내 아이도 낳고
그에게 해 줄 말은 무언가
이제까지도 눈에 잘 안 띄고
귀하고 듣기 어려웠던 얘기들
아직도 풋풋한 바보네 인심과
양심을 지키는 가난한 이웃들
환인의 나라와 비류의 역사
험난한 역경 속 이어온 문화를
총명한 아이들의 해맑은 눈빛과
당당한 조국의 새로운 미래를
깨었는 백성의 넘치는 기상과
한뜻의 노래와 민족의 재통일을
1. 얘기 2
[얘기 2]의 가사는 인간 정태춘의 생애를 운율감 있는 산문으로 구성한 하나의 서사시이다. 농촌의 평범한 아이로 태어난 화자가 이유 모를 방황감에 세상을 떠돌며 느낀 것들을 털어놓다가, 이내 휴전선으로 상징되는 사회모순을 인식하고 진실을 알고자 개안(開眼)하게 된다는 전개는 상징적이다. 그것은 평택군 도두리의 한 농촌에서 자라 도시로 상경한 정태춘이 1985년부터 87년까지 소극장과 대학강당을 무대로 <얘기 노래마당>을 진행할 때 느낀 당대의 사회현실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이고 즉자적인 반항에 가까웠던 방황을 겪던 청년이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대와 역사를 자각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보편서사를 표현한다. 개인의 인격적 성장이 시대의 변혁과 교차하는 이 익숙한 얘기는 성장소설과 역사소설이 만나는 어떤 지점을 짚어낸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다양한 국악기들로 전개되는 장단에 맞추어 전개되는 노래의 가사를 듣곤 팔도의 곳곳에서 각자의 사연과 열망을 품고 일어나는 커다란 민란의 물결을 상상했다. 서울로 모여드는 군중들과 지식의 시장에 들어선 젊은이, 정거장마다엔 떠나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눈앞엔 빛바랜 병풍과 무너진 성황당. 이제 막 세상의 눈을 뜬 젊은이가 세상의 변혁을 목도하며 보이는 긴장과 설레임, 조금도 놓치지 않고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겠다는 그 배움의 욕구를 이렇게 잘 표현한 산문이 또 있을까. 자신의 아이에게 어떤 말을 남겨줄 것인가를 고민하다 이내 농촌의 인심과 이웃들을 말하더니, 조국의 문화와 아이들의 눈빛을 말하는 [얘기 2]의 서사는 한뜻의 노래와 민족의 재통일을 외치며 끝난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또 어디로 갔으면 하는지를 온전히 우리의 말로 표현한다. 자고로 산문 가사를 쓴다고 한다면 이 정도 맛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tatGm-8Uuqw
작사 정태춘
작곡 정태춘
장르 포크/블루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 칼 쥐고 총 가진 자들
싸늘한 주검 위에 찍힌 독재의 흔적이
검붉은 피로, 썩은 살로 외치는구나
더 이상 욕되이 마라
너희 멸사봉공 외치는 자들
압제의 칼바람이 거짓 역사되어 흘러도
갈대처럼 일어서며 외치는구나
여기 한 아이 죽어 눈을 감으나
남은 이들 모두 부릅뜬 눈으로 살아
참 민주, 참 역사 향해 저 길
그 주검을 메고 함께 가는구나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도 모두 죽으리라
저기 저 민중 속으로 달려 나오며 외치는
앳된 목소리들 그이 불러 깨우는구나
일어나라 열사여, 깨어나라 투사여
일어나라 열사여, 깨어나라 투사여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바람이 분다, 저길 보아라
흐느끼는 사람들의 어깨 위
광풍이 분다, 저길 보아라
죽은 자의 혼백으로 살아온다
반역의 발굽아래 쓰러졌던 풀들을
우리네 땅 가득하게 일으켜 세우는구나
바람이 분다, 욕된 역사 위
해방의 깃발 되어 저기 오는구나
자, 부릅떠야 하네 우리들
잔악한 압제의 눈빛을 향해
자, 일어서야 하네 우리들
패배의 언 땅을 딛고
죽어간 이들 새 역사로 살아날
승리 부활의 상여를 메고
자, 나아가야 하네 우리들 통일 해방 세상 찾아서
2. 일어나라 열사여
자유와 민주의 새 시대를 열어줄 것만 같았던 87년의 함성은 선출된 군부정권의 후신과 서슬 퍼런 공안정국이 되어 돌아왔고, 투쟁의 거리에는 가슴 찢는 아픔이 여전했다. 한국 학생운동의 회광반조(廻光返照) 한복판에서 정태춘은 조선대생 이철규 열사의 의문사를 만난다. 정태춘의 [일어나라 열사여]는 한 청년열사의 원혼을 받아 안는 영매사의 진혼곡과 같다. 싸늘한 주검 위에 찍힌 독재의 흔적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영매는 거리마다 쓰러져 갔던 열사들의 넋을 한데 모아 한 판 살풀이 춤을 벌인다. 일어나라 열사여, 깨어나라 투사여. 죽은 자의 혼백으로 절규하는 계몽의 외침에 노래는 어느새 해원(解冤)의 춤사위에서 당당한 진격의 개선 행렬을 그려낸다. 가장 앞쪽에서 행렬을 선도하는 부활의 상여가 부릅뜬 산 자들을 끝없이 이끌고 나아간다. 정태춘이 노래한 염원 속에서 산 자와 죽은 자는 구분되지 않았다.
만약 내게 이 노래에 대해 조금 특별한 감정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애환일 것이다. 나는 학부 시절 한국 현대사의 국가폭력 문제에 대해 다룰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내가 주저 없이 89년부터 91년 5~6월까지 이어진 이른바 분신정국을 선택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아직(사실은 지금도) 역사의 간지(奸智)와 어른의 사정에 어두웠던 십 대 시절의 나는 6월 항쟁의 결말이 군부 세력의 재집권과 삼당합당이라는 반동으로 이어졌던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배신의 칼날을 휘둘렀던 숱한 민주인사들과 투쟁의 거리에서 소비의 유흥가로 변해버린 대학가에 분개했다. 이렇듯 현대사를 바라보는 부풀려진 의분은 내 시선을 여전히 그럴듯한 이름을 얻지 못한 91년 5월의 투쟁에 주목시켰다. 87년 6월 못지않았던 그들의 투쟁은 치열했지만, 강경대와 김귀정은 박종철과 이한열처럼 기억되지 않는다. 언론과 검찰을 동원한 공안정국의 탄압은 효과적이었고 대중은 무심했다. 제도권 86 정치인들이 자축하는 6월의 승리에 대한 의문, 어느 순간 맥락과 좌표가 뒤틀려버린 세상에 대한 고민, 나는 이것들을 풀어낼 미씽링크가 이 시대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스스로를 최악의 세대라고 자조하는 군집의 일원으로서 역사의 맥락을 마지막까지 잃지 않았던 세대이면서, 제도권에 합류하지 못한 세대에 대해 애정과 동류의식을 느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일어나라 열사여]가 담지하고 있는 그 시대의 마지막 외침은 아직까지도 나에게 청년의 머리를 짓누르는 역사의 부채감으로 기억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B1ZAVFLS3eU
작사 정태춘
작곡 정태춘
장르 포크/블루스
낭송)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은 나간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나 방 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 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 씨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가 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 씨가 달려와 문을 열었을 때, 다섯 살 혜영 양은 방바닥에 엎드린 채, 세 살 영철 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묻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어린이가 숨진 방은 3평 크기로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와 비키니 옷장 등 가구류가 타다만 성냥과 함께 불에 그을려 있었다.
이들 부부는 충남 계룡면 금대 2리에서 논 900평에 농사를 짓다가 가난에 못 이겨 지난 88년 서울로 올라왔으며, 지난해 10월 현재의 지하방을 전세 4백만 원에 얻어 살아왔다. 어머니 이 씨는 경찰에서'평소 파출부로 나가면서 부엌에는 부엌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스럽고,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라도 당할 것 같아 방문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평소 이 씨는 아이들이 먹을 점심상과 요강을 준비해 놓고 나가 일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는 주택에는 모두 6개의 지하방이 있으며, 각각 독립구조로 돼 있다.
(노래)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엔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 게 없었네
낮엔 테레비도 안 하고 우린 켤 줄도 몰라
밤에 보는 테레비도 남의 나라 세상
엄마, 아빠는 한 번도 안 나와
우리 집도, 우리 동네도 안 나와
조그만 창문의 햇볕도 스러지고
우린 종일 누워 천장만 바라보다
잠이 들다 깨다 꿈인지도 모르게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배가 고프기도 전에 밥은 다 먹어치우고
오줌이 안 마려운데도 요강으로
우린 그런 것밖엔 또 할 게 없었네
동생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후미진 계단엔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고,
도둑이라도 강도라도 말야
옆방에는 누가 사는지도 몰라,
어쩌면 거긴 낭떠러지인지도 몰라
성냥불은 그만 내 옷에 옮겨 붙고
내 눈썹, 내 머리카락도 태우고
여기저기 옮겨 붙고 훨, 훨 타올라
우리 놀란 가슴 두 눈에도 훨, 훨
(낭송)
엄마, 아빠! 우리가 그렇게 놀랐을 때
엄마, 아빠가 우리와 함께 거기 있었다면...
(노래)
방문은 꼭 꼭 잠겨서 안 열리고
하얀 연기는 방 안에 꽉 차고
우린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만 흘렸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낭송)
"우린 그렇게 죽었어
그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안고 떨기 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 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뚱이.
몸뚱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리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3. 우리들의 죽음
[우리들의 죽음]은 화재 사고로 숨진 어느 영세서민 집안의 남매에 대한 신문사 사회 면 기사를 나지막이 낭송하며 시작된다. 박은옥 가수의 섬세한 코러스와 함께 정태춘은 지하 셋방의 싸늘하고 막막한 풍경을 아이의 시점에서 읊조린다. 경비원 아버지와 파출부 어머니가 떠난 방에는 겨우 생존이라는 질긴 멍에를 이어 줄 밥상과 요강뿐, 어린아이가 마땅히 누려야 할 즐거움이나 사랑 따윈 켤 줄도 모르는 테레비에 비친 남의 나라 얘기다. 도둑이나 강도마저 기피하는, 낭떠러지로 둘러싸인 절벽과도 같은 후미진 계단. 이 절망의 구렁텅이를 비극의 아비규환으로 태워버릴 성냥불은 기어코 아이의 눈에 들어오고야 만다. 우리가 그렇게 놀랐을 때 엄마아빠가 우리와 함께 있었다면, 시골마을에서 그대로 살 수 있었다면, 여기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나라였다면... 점층적으로 번져가는 감정의 불길은 방문을 잠가놓을 수밖에 없었던 부모에 대한 원망에서 한 가정을 항시적인 죽음의 도살장에 밀어 넣은 사회와 국가에 대한 발견과 문제의식으로 옮겨 붙는다.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올 수 없다며 천사가 된 아이들은 속삭인다. 이 속삭임에 자신 있게 응답할 수 있는 날까지 노래를 듣는 우리들이 느끼는 감정의 파도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이 곡이 처음 나왔을 때, 공연윤리위원회는 어떤 가정의 부주의가 우선된 불행한 사태를 굳이 이념적 사회문제로 결부한 것은 대중가요로서 부적당하다며 개작을 요구했다. 그것은 아마 이 지하 셋방에서 일어난 은폐된 가난의 불꽃이 전 사회에 옮겨 붙어 자신들이 누리는 슬픈 세상의 이권을 앗아갈지 모른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이었으리라. 지금은 대표적인 우익 인사로 분류되는 어떤 기자가 유신 정권 시절 재야 세력이 만든 지하 유인물들을 평가하며 남긴 일화가 있다. 앞장에는 북한에서는 민주주의가 없어 항상 99% 이상의 투표율과 찬성률이 나온다는 반공 교과서의 내용이 쓰여 있고, 뒷장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99%의 투표율과 찬성률로 박정희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는 기사가 붙어 있는 유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 시기 제작되었던 지하 유인물들 중 제작자가 처벌받지 않은 사례는 이것이 유일하다. 그는 유신 시대에 나온 수많은 유인물 중에서 이것만큼 간결하고 탁월하며 뚜렷한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술회했다. 나는 마찬가지로 정태춘의 [우리들의 죽음]이야말로 한국 노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또 정당한 선동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감히 이 노래에 선동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D0e-KQnUkk0
작사 정태춘
작곡 정태춘
편곡 함춘호
장르 포크/블루스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 차도에 매달린 신호등 위에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의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마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워, 워...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비가 개이면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 타워쯤에선 뭐든 다 보일 게야
저 구로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 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또 세종로 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빨간 신호등에 멈춰 섰는 사람들 이마 위로
무심한 눈길 활짝 열리는 여기 서울 하늘 위로
한 무리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4. 92년 장마, 종로에서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정태춘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서정의 정서가 저물어 가는 사회운동과 또다시 정권교체에 실패한 당대의 정치 상황과 맞물려 회한과 상실의 형태로 발현된 노래이다. 정태춘은 종로의 풍경에서 느껴지는 공허감을 우산을 쓰고 거리를 지나쳐가는 사람들과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는 신호등 위의 비둘기로 표현한다. 무심하게 쏟아지는 장마비가 흘려보내는 것은 뜨거웠던 열망과 치열했던 투쟁, 그리고 너무 많은 희생들이 있었던 한 시대다.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더 이상 불의에 분노하지 않는 시대에 투사는 지쳤고 대중들은 다시 단잠에 빠졌다. 그럼에도 깃을 치며 날아오르는 비둘기를 보며 절망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노래는 정태춘과 시대의 어느 깊은 곳에 잠재된 승리의 기억이 남아 있음을 암시한다. 시대와 함께 달려가던 정태춘은 한 차례 벽에 붙딪쳤지만 그 음악적 깊이는 한층 두터워졌음을 보여주는 곡이다.
아마 나와 비슷한 세대의 사람이라면 이 노래를 2016년 촛불광장에서 처음 들었을지 모른다. 그날 정태춘은 선이 악을 물리치고 염치가 파렴치를 이기는, 민의가 헌법보다 우선하고 시민의 분노가 정치적 계산보다 우선하는 그런 나라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래서 분노하고, 다시는 조롱당하지도, 좌절당하지도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다시 광장에서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부르며 혁명을 추억에서 현실로 소환했다. 2015년의 백남기 농민사건이 세간에 회자되던 시기,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도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는 가사는 나를 포함한 광장의 모두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것은 우리보다 훨씬 길고 짙은 아픔을 겪고도 꿋꿋이 광장으로 돌아온 노래에게 느끼는 고마움이었고, 살아 돌아온 역사와 대화할 수 있었던 감격이었다. 물론 나는 아직 그 날 보았던 촛불의 의미 알지 못한다. 그러나 가끔 종로 3가와 종각역을 지날 때면 생각한다. 이 독재의 후예들아, 역사는 결국 우리의 것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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