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팔로 하는 포옹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주말엔 보통 약속을 잡아 천안 터미널에 간다. 어릴 적부터 역마(驛馬)에 대한 본능적인 끌림이 있어 걷는 것이 좋고 차량으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도 좋아한다. 일단 여정을 시작하면 타지가 주는 낯섦과 설렘, 여기저기로 뻗어있는 길들, 알 수 없는 사연들이 가득한 세계 속으로 내 몸을 밀어 넣는다. 차창 너머 다가오는 세계는 시야 속에서 단숨에 빨려들어 오는 듯 보이지만 그 세계의 의미는 유랑자를 붙잡지 않고 그대로 흘러간다. 움직이고 있는 동안 그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애매한 상태가 된다. 세계가 몸을 붙잡지 않고 몸이 세계에 매달리지 않으니 흘러가는 동안 세계는 사유나 증명의 범주를 벗어나 그저 경험되어진다. 일상에서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자유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역마의 미학이다.
물론 제각기 삶에 치여 분주하게 모였다가 흩어지는 숱한 인간군상들을 보고 있으면 터미널은 미학보다는 민속학이나 인류학적 공간처럼 느껴진다. 주말이면 외박이나 휴가를 마치고 귀대를 위해 차량에 오르는 군인들을 볼 수 있다. 젊은 병사와 그의 연인은 이별에 앞서 포옹도 하고 간혹 입맞춤도 나눈다. 키가 작은 여자는 발뒤꿈치를 들어 병사의 목을 두 팔로 감아 매달려서 하고, 그렇게 하면 맛이 달라지는지 입술의 각도를 바꾸어가며 한다. 승차장 앞 의자에는 혼자서 차량을 기다리는 중년 남성도 있다. 얼핏 시집처럼 보이는 책을 읽고 있던 그는 어느 구절에서 감명받았는지 한참을 눈을 감고 끄덕인다. 가장 많이 보이는 부류는 시간과 장소를 착각하여 지각한 할머니와 손자로 보이는 한 쌍의 승객들이다. 칭얼대는 아이와 허리 굽은 노인은 탑승 시간이 지났다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버스 기사의 턱짓과 손짓에 의해 제지되곤 한다. 그러면 그 노인은 손자의 손을 꼭 잡은 채로 허탈하게 뒤돌아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터미널에서 세상을 관음(觀音)할 때면 잊고 있던 삶에 대한 호기심이 되살아나 그간의 근심들이 잠시 아득해진다. 삶의 비애와 경탄이 겨울 햇살 아래 영롱하다.
지인과의 약속은 술자리였다. 내 친구는 그의 불행한 가정사에 대해 털어놓았고, 나는 비루한 회사생활에 관한 얘기를 했다. 술자리에서 사람의 불행은 언어를 통해 전달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대개 알코올에 달라붙어 덕지덕지 지저분하게 쏟아지는데, 무작정 걸어대는 통화연결음에 담기고 먹지도 못하면서 시키는 안주에 담기고 맥없이 반복되는 말버릇에 담겨서 이리저리 나뒹군다. 그러다 다시 한 잔을 따르기 위해 술병을 잡으면 손과 병의 온도 차 때문에 물방울이 맺힌다. 안은 차가운데 밖은 차갑지 않아서, 나는 아픈데 밖은 멀쩡해 보여서. 그래서 맺힌다. 일상의 언어와 술의 말에는 이런 차이가 있다. 그런고로 말수는 줄고 술병은 늘어갔다. 말을 하려다가도 말이 뜻을 저버릴 것 같아서 미덥지 못했고, 골똘히 고민하여 고른 문장은 세상이 알아듣지 못할 듯하여 머뭇거렸고, 단박에 떠오른 세상사의 당연한 이치는 이런 하나 마나 한 말을 뱉어서 무엇하나 해서 그만두었다. 대신 차마 말로 포획되지 않는 감정의 침전물들을 다 마셔버리기로 했다.
술은 인간의 기쁨과 슬픔, 소망과 좌절을 가까이 잡아당겼다가 또 멀리 밀쳐내고 해소하고 증폭시키다 마지막에는 이 모두를 한데 모아 두통으로 바꾸어 놓는다. 생활의 배설구이고 욕망의 종말처리장이다. 풍미도 없고 색감도 없으며 오로지 찌르는듯한 취기만 남기는 소주를 놓고, 우리는 삶이라는 불량배의 가랑이 아래를 기어서라도 생을 이어가야만 하는 그 지독한 세속성 때문에 취해갔다. 장소를 옮기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겨울밤의 어둠을 뚫고 난반사하고 있는 상점가의 네온사인이 꼭 한 줌의 위로라도 받고 싶어 거리를 배회하는 호객꾼처럼 처량하다. 공연히 집착하던 것들과 사람을 치열하고 때론 졸렬하게 하는 것들이 서서히 물러가는 밤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낮의 터미널이 물러간 자리엔 밤의 술자리가 짙게 깔려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생업에 눌리고 관계에 포위되어 매일을 일상의 참호 속에서 아귀다툼하며 보내다가도, 전쟁이 끝나면 귀향하여 그동안의 슬픔도 기쁨도 모두 전기와 자전의 한 페이지로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사람. 사람에 속고 자신에 속고 이 모두를 낳은 세상에 속아서 실의와 상심에 빠진 친구가 찾아와 정작 하고픈 말은 못하고 쭈뼛이고 있을 때, 그 분함과 서러움을 들여다볼 수 있고 연민의 감정을 건네줄 수 있어서 헤어질 때는 네가 있어 좀 낫네 라는 말 정도는 들을 수 있는 사람. 스쳐 가는 장삼이사들이 건네는 손쉬운 동정이나 별것 아닌 선의에도 진심으로 위로받을 수 있고, 이를테면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일지라도 거기서 사람의 온기와 구원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 술이 깨고 나면 세상이 너무 환해서 종종 분에 겨운 반성과 다짐을 하게 된다. 주말을 지나 다시 천안 터미널의 게이트다. 너나 나나, 터미널 사람들이나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고생이 참 많다.
2024 / 11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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